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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흑화할 뻔 한 너에게 : 베다 (VEDA) - 행복하지 말길 (Happyless)

최수안

2023년 4월 10일

착하게 살고 싶은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에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같은 교과목이 있었을 시절이나 윤리 도덕 등을 배울 때, 아니 그보다도 더 일찍, 인간이 태어나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유치원에서만 해도 친구들에게 착하게 대하라고만 배웠다.


나이를 먹다보니 마냥 착한 건 바보라는 것도 배우게 됐다. 남을 위해 내 것을 과도하게 양보하거나, 남의 행동으로 피해를 입었음에도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을 받지 않은 채 참고 넘어가는 것들 말이다. 착하게 살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툭 던진 한마디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바보같은 거야' 를 들으면 아무리 착하게 살던 나도 이마에 힘줄이 돋기 마련이다.그럼 착한 건 어떤 걸까?


사회화를 거친 인간은 이제 저마다의 빌런 하나 씩은 마음에 품고 산다. 쥐꼬리만한 알바 월급을 그마저도 떼먹으려는 사장의 멱살을 쥐고 싶은 상상, 만원 지하철에서 발을 밟혔을 때 '괜찮습니다' 보다는 '눈 똑바로 뜨고 다녀요!'하고 일갈하는 상상, 차별을 당했을 때 '내가 너무 예민한가?'하고 자기 검열을 하기 보다는 조목조목 따지면서 싸움을 키우는 상상, 모두 마음 속 빌런이 조금씩 커지면서 만드는 거다. 착하게 살던 아이는 크고 작은 불의의 경험을 거쳐 조금씩 빌런 어른으로 커간다. 물론 빌런이 모두에게 악당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사연은 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볼까. 1편 홈커밍의 벌쳐는 자기 딸에게 한없이 스윗한 아빠지만 오랜 공을 들인 사업을 스타크 인더스트리에 뺏기게 된 이후로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의 빌런이 되고, 2편 파 프롬 홈의 미스테리오는 역시 토니 스타크에게 사업 아이템을 저지당한 이후로 빌런이 된다. (자 이제 누가 빌런이지?) 그러나 동시에 대박 난 사업 아이템으로 자기 팀원들에게 한턱 크게 쏘는 의리있는 사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빌런이다. 주인공의 대척점에 섰단 이유 하나만으로.그래서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빌런을 온전히 빌런으로 남겨두려면 사연을 주지 말라는 얘기도 생긴다. 사연을 알면 알 수록 공감하게 되거든. 공감하는 순간, 온전히 나쁜 사람일 수만은 없거든. 빌런이 주인공인 영화 '크루엘라',나 '조커', '데드풀' 등을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하는 짓들은 악당인데 응원할 수밖에 없는 악당, 그들의 사연을 알기 때문에 악당 짓을 해도 이해하는 거다. 이리도 입체적인 인간, 그리고 녹록지 않은 인생.



 


이렇듯 관점을 비틀면 주인공도 빌런이 될 수 있고 빌런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베다 (VEDA)의 이번 싱글 악당 프로젝트 1 - '행복하지 말길 (Happyless)'은 이런 관점에서 출발했다.




"나는 네가 불행하길 매일 간절하게 빌어

나는 모르는 그런 행복하지 말길"



베다 (VEDA)는 귀여운 사운드와 음색으로 '나는 네가 불행하길 매일 간절하게' 빈다. 그럼 매일 불행하길 바라는 '너'는 누구일까. 듣는 사람에 따라 이별한 전 남자친구일 수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못된 집주인일수도, 조별과제에 무임승차한 무책임한 조원일 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가 만난 인종 차별 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럼 여기서 문제. 너를 저주하는 나와, 나를 이지경까지 만들어버린 너, 둘 중 누가 진짜 악당일까?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결국 입장 차이라는 것. 먼저 상처 주지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 악당이 되지는 않았겠지.베다 (VEDA)는 이번 싱글 앨범 소개서에 이렇게 말했다. '편견과 차별 속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난 나와 널 세상은 악이라고 정의해도 우린 절대 굴하지 않아.' 그리고 외려 쿨하게 반문한다. “그게 뭐가 나쁜 건데.”


악당 PROJECT 1. [HAPPYLESS]를 발매한 베다 (VEDA)



"단 한 번이라도

내 머릿속에서

살아보길 바라

내가 살아온 세계는 어떤지

누가 나쁜 건지"



이렇게 다소 어두울 수 있는 메시지를 신나고 키치한, 게다가 귀엽기까지한(!) 사운드의 밴드곡으로 해맑게 탈바꿈했다. 이런 트릭은 언제나 즐겁다. 인트로에 코인을 넣으면 게임이 시작되는 8비트 오락기 사운드와 요즘같이 버추얼한 시대에 딱 맞는 애니메이션 아트워크까지. 게다가 음악의 소재가 기존 클리셰인 '상처입은 나' 같은 류가 아닌 키치한 '빌런'으로 설정한 것은 또 어떠랴. 가사 속 '괴물', '혼돈', 'Trolling' 등의 표현은 마치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임의 인물은 '주인공', 혹은 '악당' 뿐이니, 이런 메시지를 담은 음악에 게임스러운 요소를 넣은 것도 밝은 톤을 유지하면서 가사에 몰입을 더하는 좋은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세상에 숨어서 자제는 안 할래

모든 걸 망쳐버릴거야 굳이"




이번 싱글은 정확히 '악당 프로젝트 1'이다. 악당 시리즈를 '행복하지 말길'로 시작해 이어나가겠다는 뜻이다. 세상에 숨어서 자제하는 삶이 착한 삶 = 바보같은 삶이라면 베다는 그런 착함에서 과감히 벗어나 '굳이 모든 걸 망쳐버리겠다'는 악당의 길을 선택한다. 베다 (VEDA)가 끄집어낸 괴물이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해나갈지, 다음 싱글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상처가 너무나 커서 너가 불행하길 바라는 마음을 매일같이 비는 마음은 얼마나 고단할까. 남을 미워하는 건 생각보다 에너지가 엄청 뺏기는 일이다. 복수도 체력과 지구력이 강해야 할 수 있고 원망하는 마음은 감정 소모가 커서 쉽게 피곤해진다. 에너지를 빼앗기는 건 내 손해다. 그러니 남을 미워하는 악당같은 마음이 튀어나올 때는 그저 이 노래를 들으며 목청껏 따라 부르자. 이 노래가 뿜어내는 귀여움에 어느 정도 노여움이 풀릴지도 모르니.



아티스트 | 베다 (VEDA)

에디터 | 최수안

유통 | 쿼터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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